(489) 天風11 보수·친일·유신단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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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 天風11 보수·친일·유신단죄 31
  • 세종매일
  • 승인 2021.07.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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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재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대는 아버지세대라고 생각해요. 식민지에 태어나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어린 날을 보내셨죠?”
“해방되자 분단이 기다렸지. 끔찍한 좌우대립도 겪었고. 혼돈과 혼란, 공포와 불안 속에 청춘은 흘러가버렸어. 죽는 날까지 씻기지 않을 영혼의 상처인 6·25전쟁도 경험했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겠어요.”
“그 전쟁터, 피난생활에서 시체와 비명 소리가 기억에 생생해.”
“무서웠어요?”
“두려움과 분노, 평온함이 교차되며 스쳐 지나갔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렬했지.”

함흥에서 피난길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는 존경을 받아 마땅한 세대였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보름여 만에 피란을 떠나며 국민의 삶을 더욱 깊은 도탄에 빠트렸다. 
나라가 전쟁에 처해 위기에 있는 백성을 뒤로한 채 도망간 이만승은 두려움을 숨기지 못할 만큼 허약했다. 

한강 인도교 폭파.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북한군이 미아리 저지선을 제치고 서울로 입성한 지 두 시간 만에 한강철교는 엄청난 섬광과 천지를 뒤엎는 듯한 폭음과 함께, 그렇게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성급하고도 무계획적인 결정이었다. 비록 적군이 가까이 온다고 해도 한강다리 앞에서 서울역까지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한강 인도교 폭파는 당시 수백만 서울시민을 아무 대책 없이 적 치하에 묶어놓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무려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적에게 피살되거나 북으로 납치 당해 갔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참담한 비극이었다. 결국 무능한 독재자가 속한 국가에 대해 느끼는 뼈저린 절망이었다. 

통째로 한 시대를 흑색으로 칠해서 매도해서도 안 되겠으나, 그 시대를 미화해서도 안 된다. 
건전한 비판을 통한 미래로 향하여야 한다. 

새마을 운동 또한, 운명의 주인은 농민 자신이며, 자립적이 됨으로써 진정한 낙원을 달성할 수 있다는 꿈같은 이상주의였던 것이었다. 

낙후된 농촌을 일깨우기도 했지만, 정권유지책의 일환으로 오히려 각종 비리에 온상이었고 도·농간의 격차가 심화 됐다.  ‘실질적 자유’가 박탈당해도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위대한 지도자는 1979년 10월 26일 그의 부하에게 권총암살로 사망했다. 
온 국민이 통곡했다. 물론 누가 진심이고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정의가 승리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독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영웅시하였다. 

박정환. 그는 현대사의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 중 하나로 범죄와 증오, 인간의 고통을 상징한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눈에서 악마를 보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남긴 증오와 분열의 이데올로기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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