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계룡로컬푸드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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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계룡로컬푸드의 빛과 그림자
  • 놀뫼신문
  • 승인 2019.06.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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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또 다른 이름격인 ‘신토불이’가 한때 일본어라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이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곳은 일본이 맞다. 1907년 일본의 육군 약제감 이시즈카가 식양회(食養会)를 만들면서 처음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농협이 ‘우리 농산물 애용운동’을 벌이면서 대대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단어에 친일 시비가 붙자 농협에서는 문헌 연구를 시작하였다. 원나라 때 보도법사가 펴낸 ‘노산연종보감’에서 ‘身土本來無二像(몸과 흙은 본래 두 가지 모습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에서 나온 게송(偈頌)으로서, 이런 불이사상과 다산 정약용을 연구한 한학자 이을호 선생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농협은 밝혔다. 결론적으로 신토불이의 원전은 중국 불전이다. 일본에서 먼저 썼을 뿐, 그들이 새롭게 만든 말까지는 아니다. 그런데도 농협은 ‘일본에서 먼저 쓰던 말’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 말이 한국에서 먼저 들여다 쓴 것처럼 오해할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토불이’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 말이 어디에서 나왔든 간에 우리 농촌과 농민을 살리자는 취지에 십분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1989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이 임박할 때 당시 한호선 농협중앙회회장이 대대적인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덕이기도 하다.

 

로컬푸드, 그린마켓 지산지소로 

 

로컬푸드(local food) 역시 그 어원이나 유입 경로가 신토불이와 엇비슷하다. 영어인 이 단어는 일본과 상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로컬푸드는 1990년대 초 유럽에서 안전한 식품을 원하는 소비자와 지역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꾀하려는 생산자의 이해가 일치를 보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미국과 일본으로 건너가서 미국은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 뉴욕에서는 ‘그린마켓’ 등으로 이름과 특색을 바꾸어 갔다. 일본에서는 번져간 지산지소(地産地消)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완주군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표준이 되었다. 

그 동안 계룡시에도 로컬푸드 운동이 일어서 나름 신토불이, 로컬푸드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금암동과 엄사면에 로컬푸드 매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상황이다. 엄사면 하나로마트에 로컬푸드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기는 하나 계룡 지역의 특성상 화요장, 금요장 같은 도농복합 장터가 로컬푸드 역할을 일부 감당해서인지 크게 빛 보지 못하였다. 싱싱한 농산물도 사고, 간 김에 공산품도 함께 구매하고자 할 때는 연산 로컬푸드 매장을 찾는 주부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논산계룡농협은 로컬푸드의 의지를 갖고 계룡시 지원도 받아 총 43억 원을 투입, 계룡에도 본격적인 로컬푸드 시대를 열었다. 지난 5월 22일 계룡로컬푸드센터 준공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오픈 당시 미흡했던 점들도 1주일여 지나는 동안 조금씩 개선중이다. 로컬푸드의 생명이랄 수 있는 생산자 얼굴이 일부나마 진열대에 올라왔다. 첫 관문인 주차장 진입로가 불편했는데 다소 편해졌다. 로컬푸드 명분 중 하나가 직거래를 통한 유통구조 개선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도 배출가스를 줄이자면 대중교통이나 순환버스를 이용한 편의 제공도 숙제이다. 

이러저런 숙제를 안고서 출발부터 하고 본 로컬푸드에는 현재 계룡시 관내 150여 회원 농가에서 생산한 지역 농산물 200여 품목이 진열되어 있다. 삼잎국화의 효능 같은 설명문도 부착해 놓았고, 충남6차산업전문코너도 마련돼 있다. 외지 농산물 코너도 별도 설치되어 있다. 인근 세종시의 경우 해산물은 해안도시와 MOU를 체결하여 내놓기도 하고, 명절 때는 8도 농산물 특설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계룡스러움’이 부족한 계룡로컬

 

그런데 외지농산물 코너를 보니 사과나 참외, 고추 등 일반적인 농산물이다. 로컬푸드 정신과 정면 배치되는 진열대이다. 어떤 사정들이 있어서 계룡 관내 조달이 어렵다면 지척지간인 논산과 유성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품목들이다. 다른 농산물 시장과는 달리 로컬푸드는 신토불이 생명철학에서 출발한다. 수산물 같은 거야 타지산이 환영이지만, 일반 농산품은 반드시 인접한 지역 농가의 것으로 구입한다는 철칙을 세우고 자율적으로 지켜나가야 로컬푸드답고, 롱런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로컬푸드가 도농직거래라서 가능한 착한 가격이나 신선도도 나홀로 장점이 아니다. 공산품이 동시에 해결되는 대형매장 홈플러스도 그날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 야간에는 떨이를 하기 때문에, 로컬푸드의 착한 가격과 신선도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지역사회 문화공간으로도 기능하게 될 2~3층 식당 이름은 ‘농부찬가’이다. 메뉴나 인테리어에서 ‘농가맛집’이라는 분위기가 2% 부족해 보인다. 세미나실을 겸한 150석 규모의 3층 공간도 로컬푸드 정신에 걸맞은 식단과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오면 더 어울릴 거 같다. 4층 옥상은 조경에 공들인 옥상공원인데, 안내판이 없어선지 찾는 이가 별로 없다. 세계적 명성까지 얻어낸 세종종합청사 옥상공원은, 산촌에서도 보기 힘든 약초나 희귀식물 지천이다. 

로컬(local) 이름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역적(地域的)이어야 한다. 계룡로컬푸드라는 간판이 명실상부해야만 그때부터 계룡의 이미지가 용솟음친다. 기실 대한민국에서 계룡(鷄龍)의 이미지처럼 로컬한 게 어디 있겠는가! 계룡과 로컬푸드는 환상의 궁합이다. 2020 군문화엑스포를 염두에 두고 계룡의 신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두메산골 산나물이나 약초, 팥거리 같은 계룡 특산품 등을 전면 배치할 필요도 있다. 

계룡 로컬푸드에 들어서는 순간 청정(淸淨) 계룡의 이미지를  호흡하고 그 이미지까지 덤으로 사가는 ‘바이 계룡’의 진원지가 될 때, 로컬푸드센터는 농산물판매장으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향적산 힐링숲과도 더불어서 영산(靈山) 계룡의 정기와 문화, 전설과 이야기 집산지로서 자리매김이 되면 금상첨화이겠다. 생산자의 저변확대와 소비자의 계룡먹거리문화의 향유는, 열린 아고라의 중지(衆智)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계룡로컬푸드를 관이나 농협직원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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