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은 쉼의 예술, Pause.
나에게낭독, 하루 5분씩 녹음
지난 22일, 논산대건고에서 낭독특강이 열렸다. 저녁 7시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하여 열린 이 특강에 50여 명 넘는 학생들이 수강을 신청하였다. 고1 외에도 모의고사를 하루 앞둔 고2~3이 각각 10명씩 참여하였다.
KBS 서혜정 성우가 강사로 나선 이 특강 제목은 “낭독의 즐거움”. 제목처럼 마냥 즐거웠는지 예정됐던 1.5시간을 훌쩍 넘겨 세 시간쯤 후에나 끝이 났다. 여기에는 질의 응답 한 시간, 사인과 기념촬영 시간 30분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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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다 찍고서 만족해하며 돌아가는 김현빈 학생에게 대화를 청하였다. “저는 평범하게 말해도 특유의 앵앵거리는 목소리인 탓인지 진지하게 말해도 친구들이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소리를 교정해보고 싶어 참석했다는 현빈은 용감하게 손을 들고 나와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 낭독을 하였다. 물론 교정은 이루어졌다. “쉼표 하고 마침표 보이죠? 여기서 하나~ 둘~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어 볼래요, Pause!”
그 후로도 나온 학생들에게 동어반복이었다. 낭독을 “쉼의 예술”이라고 정의하는 서혜정 강사는 SPEECH의 머리글자를 따서 낭독을 풀어나갔다. 우선 말의 구성 요소를 Sincerity(진정성)+ Passion(열정)+ Emotion(감정)로 적으면서, 특히 진정성에 방점을 찍었다. 말하는 방법으로는 Easy+ Cantabile+ Humor를 제창하였다.
이어서 낭독의 6하원칙도 제시하였다. ‘정확한 발음’에서 시작하여 ‘Pause(쉼)’까지. 낭독의 기저는 한 템포 쉬어가는 포즈임을 강조하고 끊임 없이 교정하였다, “낭독=쉼의 예술”이라는 단언과 함께.
집중력에는 낭독이 최고
낭독은 하나의 기술이기에 앞서, 영혼의 울림이자 삶의 기본이라는 데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후반부 강의는 낭독 수업이라기보다, 낭독을 통한 삶, 낭독과 함께 하는 수험생활 노하우로 비약하는 감이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면서, 집중과 몰입을 들고 나왔다. 본인의 학창시절 경험과 메소드 연기도 거론하면서, 공부도 빙의의 단계에 진입해볼 것을 권유하였다.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고 나온 직후라서 긴 시간 강의에 졸릴 만도 하련만, 학생들의 경청 집중도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강의 후기에 이런 장면도 나온다. “...목소리에 자신감을 주는 코멘트를 자주 해주셔서 용기가 생겼습니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저라면 지쳐서 단답으로 응수할 것 같아요... 이미 레전드셔서... 그냥 성우님 용안 한번 뵙는 것만으로 괜찮다 생각하여 말을 아꼈는데... 다른 곳 가셔서도 저와 같은 학생들 기쁘게 해주셨으면...”
“지금까지 받아온 외부강사 특강 중에서 최고였다”는 열호는, 강의주제를 학생들의 니즈와 고민 대목과 일치시켜 나가는 엄마다움과 진지함의 발로 같았다. 학생들의 질문도 처음에는 낭독, 성우, 연예인, 목소리 재현 쪽이었으나 나중에는 아무말질문으로 번져나갔다. 그럼에도 답변은 낭독, 언어생활과 직간접 연계시켜서 시종일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듯했다.
낭독은 선생님들도 배워요
이 특강은 학생들만 경청한 게 아니다. 황석균 교감을 포함한 5명의 교사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맨 나중 사인하는 자리에서도 학생들 줄에 섞인 생도 하나였다. 전민지 국어교사에게 소감을 물었다.
“‘낭독의 육하원칙’을 되새겨 봤어요. 국어교사로서 수업을 하며 해당 내용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고3 담임했을 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좋은 기운이 사라진다. 예쁘고 좋은 말만 해야 주변에 좋은 기운이 생긴다.’를 말버릇처럼 했는데, 오늘 성우님은 그런 저를 응원해 주시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말의 힘’, ‘낭독의 중요함’을 알고 실천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 행사를 기획한 양정은 사서교사는, 이번 여름 김홍신문학관에서 개최한 서혜정낭독연구소 “낭독의 즐거움” 8차 과정을 수료한 터였다. “남학생들이라 이공계열이 좀더 강한 성향을 보이는 학교지만, 말과 글, 특히 낭독, 발표 등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잖아요. 우리 학생들이 더 멋진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데 한발짝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요.”라며 특강 개최 취지를 설명하는 양 교사는 고마움 표해야 할 곳을 빼먹지 않았다. “ 『나에게 낭독』책을 30권 구매하여 공유했어요. 그거랑 최소치 강사비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 프로그램 예산 지원을 받아서 진행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상당수 학생들 앞에는 수험공부와 무관해 보이는 책자가 하나씩 놓여 있다. 그 책을 못 받은 학생 중 하나는 친구에게 책 껍데기를 벗겨 달라고 하더니만 거기에다 사인을 받고서, 그걸 구호처럼 내세우며 포즈를 취하였다. 밤 10시, 출장 관계로 부재중인 교장실(교장·김춘오 신부)과 특강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AI심포지엄 교실의 불은 하나씩 꺼져갔다. 강사가 “밤 10시, 늦어도 자정에는 꼭 자야 한다”고 강변했지만, 기숙사의 불은 여전한 채~~~
강경 낭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그간 논산에서 낭독의 바람이 불긴 불었지만 약풍이었다. 서혜정 성우가 논산에서 낭독특강을 처음 한 것은 3년 전, 소금문학관에서였다. 작년 4월 17일에는 강경도서관에서 낭독극을 하였다. 성우계의 전설 고은정 성우와 3명의 탑성우가 함께 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홍도야 우지 마라” 이 낭독극에 강경읍민 100여 명이 울고 웃었다. 이 밖에도 서 성우는 논산열린도서관 낭독극 행사에도 관여하는 등 논산과의 연을 간단없이 이어왔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낭독교실 집중과정을 갖게 된 것이다. 7월 23일 시작하여 매주 화·금 8회차의 교육과 훈련을 거쳐 발표 시간으로 과정을 마무리하였다. 정원이 15명이었으나 청강생도 합류하여 30여 명이 매번 폭염을 뚫고와 기역(ㄱ)자 세미나실을 메웠다. 8월 20일 최종발표회를 대비해서는 15 명 각각 1:1 코칭을 강행군하였다. 그것도 두세 번씩. 그 결과 20일에는 김홍신 작가가 동석한 가운데 <김홍신을 귀로 읽다>는 주제 하에 김홍신 작품 낭독의 향연이 펼쳐졌다. 시, 에세이, 동화, 소설 장르 중 단연 인기를 끈 것은 강마루(내동초5학년)와 어른 3명이 열연한 동화극 『물렀거라 왕딱지 나가신다』
동화극이나 낭독극은, 라디오연속극의 버금딸림이다. 논산에서는 시낭송회 무대에 시극도 간간 선보였다. 이처럼 낭독은 극화로도 승화되지만, 처음은 스스로낭독에서 시작되기 마련. 우리 교육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의 읽기, 즉 음독(音讀)에서 출발한다. 서당에서 풍월 읊는 소리, 성독(聲讀)이나 경전 독송(讀誦), 선비들의 시조 소리는 독특한 음색과 운치가 돋보인다. 최근 학교에서의 읽기(음독)는 천편일률적인 감이 적잖다. 진정성과 열정이 강조되지 않아선지, 서자서아자아 분위기다. 서혜정 성우는 그런 음독을 넘어서, 무엇보다도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낭독의 세계로 초대한다. 리얼러티(reality), 낭독은 평소 생활 속에서 말하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게 요지다, 특히 시낭송에서는 더욱더.
논산 곳곳의 낭독회와 낭독붐
논산에서 열리는 낭독교실 중의 하나로 YWCA낭독동아리가 있다. 매주 목 12~13시 이경숙 이사가 일곱 명의 회원과 함께하는 낭독 자리다. 교재는 성경과 연관 있는 책으로 진행한다. 송불암에서는 10월 12일 청소년 20여 명과 함께 하는 문학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천년고찰을 50년째 지켜온 여의주 스님은 본인의 7순을 개인축하연 대신, 아이들과 함께하는 낭송, 낭독, 음악, 사찰음식 소풍자리로 갈음할 예정이라고 밝힌다.
학교마다 문학동아리가 있는데, 인문계인 대건고는 낭독에 관심이 많다. “ ‘월요문학회’를 구성하여 매주 월요일마다 모여 낭독극을 준비해 왔어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선정, 같이 읽은 후 대본과 화면, 음악 등을 직접 준비하는 과정이죠. 낭독극에 필요한 ‘스툴’은 외부 공방강사를 초청하여 함께 제작하였고요. 그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탈향>, 고전소설 <운영전>으로 교내 낭독극 공연을 해왔습니다. 2학기에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문학작품들을 읽고, 하나의 주제를 선정한 다음 낭독극으로 제작 표현하고자 합니다.” 전문가 포스마저 느껴지는 전민지 지도교사의 설명이다.
시대는 바야흐로 묵독에서 음독과 낭독(극), 오디오북이 트렌드다. 낭독에 있어서도 논산은 그간 외부와의 교류가 있어왔다. 최근 김홍신문학관에서는 두 차례 초청낭독회가 열렸다. 8월 9일에는 이용순 성우가 이끄는 ‘달팽이낭독회’ 회원 10여 명이 <김홍신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제목으로 낭독회를 열었다. 그 중 네 명이 공동참여한 소설 <인간시장> 한 장면은 50여 년 전 논산읍내 골목길을 흑백화면으로 재현해내는 듯싶었다. 그들의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pSRjbKQ2ILE&t=47s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낭독 돌풍의 발원지 김홍신문학관
두 번째 낭독회는 20일 오후 1시 오디오북낭독연구회(대표·이경희)가 ‘김홍신문학과 고품격 낭독의 만남’을 부제로 무대에 올렸다. 이 무대에서는 김홍신 작가의 139번째 신간 『겪어보면 안다』만 선정하여 집중도를 높였다. 이러저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날 3시에는 ‘논산 김홍신문학관 낭독교실 수료자들의 낭독발표회’가 1.5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이상 세 낭독회는 김홍신문학관 유튜브에서 전체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그 중 하나인 오디오북낭독연구회 동영상은 https://youtu.be/EoqAs0XUPsQ 이다. 이 연구회 이름이 시사하듯, 오디오북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책이나 유튜브를 눈으로 보는 동안에 우리는 다른 일을 할 여지가 없다. 라디오나 오디오북에서는 눈과 손이 자유롭다. 책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소설 읽어주는 전기수나 변사의 목소리에 우리는 쏙 빠져들었다. 우리는 주로 듣고 즐기는 입장이지만, 이제는 내가 책 읽어주는 남자/ 여자로 변신해봄직한 시점이다.
『나에게 낭독』저자 서혜정은 학생들에게 5분 녹음, 5분 모니터링을 권한다. “한 달만 지속해도 말하기, 발표하기에서도 확연하게 달라진 나 자신의 모습에 놀랄 거”라면서. 특히 나 자신에게, 영혼으로 낭독할 것을 권하는 그녀의 열강은 별도의 박스 기사에 담아둔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