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현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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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현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 세종매일
  • 승인 2023.09.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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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18 추억의 썰매장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몇 년 전부터 동네로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저수지 밑 논에다 물을 대고 썰매장을 개장했다. 

조치원읍내에서는 유일하게 유원지가 되는 우리 동네 고복저수지에 또 하나의 명소가 생긴 셈이다. 

처음 이 옛날 썰매장이 생기고 나서 참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옛 추억의 장소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치원은 작은 도시지만 이 썰매장이 겨울마다 매년 없어지지 않는 걸 보면 웬만큼 장사가 되는 것 같았다.

3년 전부터 겨울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썰매를 타러 갔는데 올해는 그래도 이놈들이 부쩍 커서 자기가 알아서 송곳으로 썰매를 지칠 줄 알았다. 

3년 전만 해도 두 놈 다 나이가 어려 끈이 묶인 썰매를 빌려 앞에서 끌어 주어야 했다. 

오늘도 아이들을 데리고 썰매를 탔는데 아이들 핑계를 대고 어른인 내가 더 재미있게 놀았다. 

옛날에는 썰매를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 
좀 자상하신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썰매가 튼튼하고 좋았는데 대부분 아이들은 스스로 썰매를 만들어야 했다. 

각목 위에다 송판을 깔고 그 밑에다 철사 도막을 구부려 못으로 양쪽을 고정시켰다. 

그래서 썰매를 탈 때마다 철사줄이 빠져 그걸 고쳐 다시 타야 했다. 송곳은 보통 가시나무나 소나무로 만들었는데 산에 가서 반듯한 나무만 보면 썰매 송곳을 만들 궁리를 했다. 

우리가 조금 크고 나서는 한 발짜리 썰매를 만들어 탔는데 날이 하나짜리로 보통 두꺼운 철판을 썰매 밑에다 끼우고 서서 타는 썰매였다. 어린 아이들은 앉아서 타는 두 줄짜리 썰매였는데, 조금 크면 한 발짜리를 타야 했고, 한 발짜리를 타지 못하면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논에서도 썰매를 많이 탔지만 어른들이 논에 물을 가두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면 냇가에 발이 빠지거나 옷이 젖어 뚝방에 불을 피우고 옷을 말려야 했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한테 꾸지람을 듣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들 성욱이랑 성안이는 썰매 지치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에는 싸늘한 바람과 추위 때문에 온몸을 움츠리고 망설이더니 썰매가 미끄러지는 맛을 들이자 추운 줄도 모르고 송곳을 지치기 시작했다. 

“아빠, 오뎅 사줘.”
“응, 이리 나와라.”

썰매장 입구에는 포장을 치고 컵라면과 오뎅을 팔고 있었다. 

아들 성욱이 놈은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고 난 오뎅을 한 그릇 시켰다. 펄펄 끓는 난로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 국물은 추운 우리들의 몸을 녹여주었다. 

방학이라 읍내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와 있었다. 성욱이가 다니는 유치원 친구도 한 명 왔다.

“여기가 니네 동네냐?”
“응, 고복저수지가 우리 동네야. 우리 만날 여기 놀러 온다.”

성욱이는 자기 친구를 만나 자랑을 하고 있었다. 

옛날 우리가 썰매를 탈 때는 부모님들이 없이 아이들끼리만 놀았는데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의 아이들은 모두 자가용을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갑을 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한테 추운 겨울날 방구석에 앉아 컴퓨터나 하고 비디오나 보는 것보다 이처럼 썰매를 탈 수 있는 썰매장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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